첫째 방주의 문
창세기 6~7장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어 가족과 생물들을 들어가게 하셨고, 방주의 문이 닫힌 후에는 들어간 자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으며, 그 밖에는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둘째 유월절 문
출애굽기 12장은 어린양의 피가 발라진 집만이 죽음의 재앙을 피하고 생명을 얻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예표하며, 구원의 길은 오직 그분 안에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곧 문이니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 하셨습니다. 피 없는 문은 죽음과 심판뿐이고, 문 안은 안전과 생명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배와 말씀, 기도, 언약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하며, 은혜의 문이 닫히기 전에 반드시 그리스도께로 들어가야 합니다.
셋째 양의 문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이라 하시며, 그를 통해 들어가는 자는 구원과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의 문은 목자의 보호와 관심 아래 있는 자리로, 양들은 그 안에서 먹이와 안전을 보장받습니다. 그러나 문 밖에 있는 양은 위험과 죽음에 노출됩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을 알고 돌보시며, 결국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를 위한 완전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넷째 지성소의 문-휘장
구약 성막의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장벽이었고, 대제사장만 해마다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지성소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의 피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죄 사함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자녀로 살아가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길이 되셨습니다.
다섯째 열려진 무덤의 문
예수님의 무덤은 처음엔 죽음과 절망의 상징이었으나, 부활하심으로 열린 소망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천사가 돌을 굴려내어 빈 무덤을 드러냈고, 이는 세 가지를 증언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된 신실하심, 둘째, 사망을 이기신 승리, 셋째, 성도의 부활의 보증입니다. 열린 무덤은 복음을 전하라는 파송의 자리로, 기독교의 차별성은 바로 비어 있는 무덤, 곧 부활의 증거에 있습니다.
여섯째 좁은 문
마태복음 7장 13-14절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십니다. 멸망의 문은 넓어 많은 이들이 가지만, 생명의 문은 좁아 찾는 자가 적습니다. 세상은 물질·권력·잘못된 사상에 휩쓸려 구원을 잃게 합니다. 그러나 물질이나 철학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죄인 된 인간이 성령의 역사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만 좁은 문, 곧 영생의 문으로 들어가 참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일곱번째 영생의 문
새 예루살렘 성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나,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계 21:23-27). 성은 하나님의 영광과 어린양의 빛으로 가득하며, 거기에는 밤이 없습니다. 성경의 모든 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방주의 문, 유월절의 문, 지성소의 문, 양의 문, 좁은 문, 열린 무덤의 문, 새 예루살렘의 문은 모두 구원과 생명의 길, 곧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지금은 은혜의 문이 열려 있는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