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맞이하는 주일이며, 대강절 마지막 주일을 맞아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지닌 사건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 말하듯, 우리는 세상의 쾌락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합당한 목적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바로 깨달을 때 하나님의 비전과 영적인 비밀을 알게 되며, 그로 인해 영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삶을 살게 됩니다.
첫째 구원하시러 오셨습니다.
천사가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전한 말씀은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선언이었습니다. 구주란 우리를 멸망에서 건지시는 분이며, 헬라어로 소테르, 곧 구원자요 구조자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삶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죄와 하나님의 진노, 사망과 심판, 사탄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순한 나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이며, 목적에서 벗어난 삶입니다. 죄는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두려움과 파괴를 낳으며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윤리, 종교로는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분명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성탄절은 바로 이 죄 문제 해결의 시작이며, 예수님을 구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인생의 왕으로 모시는 신앙의 선언입니다.
둘째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
마태복음 1장 23절은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며,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은 단지 좋은 감정의 순간에만이 아니라 가장 힘들고 두려운 순간에도 동행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격려는 영혼의 산소와 같다는 말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격려하시는 분이십니다. 목회의 길에서 흔들리던 때에 “너는 내 것이라”는 이사야 43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고,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지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과거 성령의 임재 가운데 삶이 변화되었던 체험과도 같았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늘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에게도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반복하여 말씀하시며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 또한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늘 함께하시며 새 힘과 용기, 은혜와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셋째 참된 사랑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동성애 반대운동을 하며 목회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을 때, 동성애는 사랑인데 왜 반대하느냐는 항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에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인간의 육체적 욕망인 에로스가 아니라, 죄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아가페의 사랑임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지만 죄를 허용하지 않으시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끝까지 사랑하시고, 십자가로 그 사랑을 완성하시며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계명은 예수님의 희생을 본받는 사랑입니다. 말세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세상 속에서 참된 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 생명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따라 사는 자는 이 험한 세상에서도 살아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