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의 사람은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육체의 정욕에 빠져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육체의 정욕에 빠져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신학자들 중에 자신의 신학적인 이념을 드러내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혁명가로 묘사하거나 동성애자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죄악된 육신에 속한 자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을 가져야 영의 사람이 됩니다.
둘째 영으로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부활체의 모습으로 영원히 다시 살아가는 능력의 축복의 역사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믿고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히 살 것을 믿을 때에 영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죄악에 빠졌던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죄의 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피 흘려 대신 사하심으로 죄의 담을 허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천사들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사함을 받은 주의 제자들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넷째 성령이 우리를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는 은혜를 누립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셔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다섯째 참 자유를 누립니다.
고후 3장 17절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으면 요셉이 자기들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에게 복수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형들은 복수의 마음이라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 쌓여 있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용서의 축복의 자유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섯째 주님이 행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2장 6절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리하여 열매가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행함이 다릅니다. 말이 다릅니다. 그의 삶의 열매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게 하십니다.
일곱째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요한복음 15장 8절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면 됩니다. 입으로 찬양하고 말로 찬양하고 기업을 잘 경영하면서 영광을 돌리고 자신의 달란트로 또는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가지고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